문화

마리아 칼라스: 20세기 최고의 디바, 영원한 프리마 돈나

무_소식 2024. 8. 30. 04:56

마리아 칼라스의 공연 모습


마리아 칼라스는 1923년 12월 2일 뉴욕에서 태어난 그리스 출신의 소프라노로, 20세기 최고의 디바로 평가받는 전설적인 성악가입니다. 독보적인 음색과 탁월한 연기력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칼라스는 오페라 무대에서 ‘프리마 돈나’로 군림하며 수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녀의 인생과 커리어는 오페라의 역사와 깊이 연관되어 있으며, 뛰어난 예술성으로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프리마 돈나로 군림하기까지: 칼라스의 성장과 성공

칼라스는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목소리와 체구로 주목받았으며, 어머니와 함께 그리스로 돌아가 아테네에서 성악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1937년, 아테네 음악원의 성악 교사였던 마리아 트리벨라를 만나 성악의 기초를 다졌고, 열네 살에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산투차 역으로 첫 오페라 무대에 섰습니다. 이후 이달고를 사사하며 아테네 오페라단의 평생 단원이 되었고, 이탈리아에서의 성공적인 데뷔를 통해 세계적인 성악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47년, 이탈리아 베르디 아레나에서 라 조콘다로 이탈리아 데뷔 무대를 가진 칼라스는 이후 베니스의 라 페니체 극장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투란도트로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특히, 1948년 노르마에서 그녀의 독보적인 목소리와 강렬한 연기로 최고의 찬사를 받았으며, 이 작품은 이후 칼라스의 대표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습니다.

국제적 성공과 음반 활동

칼라스는 이탈리아를 넘어 유럽과 남미, 북미 등지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쌓았습니다. 1951년 밀라노 라 스칼라에서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의 엘레나 역으로 대성공을 거두며, 이후 라 스칼라의 중심 인물로 활약했습니다. 1952년에는 EMI와 계약을 맺고, 독점 아티스트로서 수많은 레코딩을 남겼습니다. 칼라스의 녹음은 단순한 음반 발매를 넘어, 그녀의 목소리와 연기력을 전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었습니다.

1954년에는 혹독한 다이어트를 통해 몸매를 변화시키며, 성량에 대한 우려를 극복하고 더욱 매끄럽고 풍부한 목소리로 무대에 복귀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날씬한 몸매와 함께 오히려 더욱 풍성해졌으며, 뉴욕 메트로폴리탄 무대에서 유례없는 최고의 대우를 받았습니다. 1958년 파리 데뷔 공연에서는 프랑스 대통령 부부를 비롯한 유명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그녀의 국제적 인기를 실감케 했습니다.

디바의 은퇴와 마지막 여정

1960년대 들어 칼라스는 무대에 서는 횟수를 줄이며 점차 은퇴를 준비했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뛰어난 성악가였으나, 건강 문제와 개인적인 이유로 무대에서의 활동을 줄였고, 1965년 파리에서의 노르마 공연을 마지막으로 오페라 무대에서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이후에는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자신의 경험과 예술성을 전수하는 데 힘썼습니다.

생애 마지막 활동으로는 테너 주세페 디 스테파노와 함께한 7개월간의 순회 연주가 있습니다. 1977년 9월 16일, 마리아 칼라스는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의 예술적 유산은 여전히 살아 숨 쉬며, 오페라의 역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칼라스는 사후에도 미국 ABC 방송이 선정한 20세기를 빛낸 100인의 여성에 이름을 올리며, 전설적인 디바로서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결론: 영원한 디바, 마리아 칼라스

마리아 칼라스는 단순한 소프라노를 넘어, 오페라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녀의 독특한 음색과 강렬한 연기력, 그리고 무대 위에서의 존재감은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칼라스는 그리스에서 ‘마리아 칼라스의 해’를 선포하며 기념할 만큼,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예술가입니다. 그녀의 예술적 유산은 오페라의 경계를 넘어, 전 세계 음악 애호가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