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플라시도 도밍고: 오페라의 제왕, 세계적인 테너

무_소식 2024. 8. 30. 05:59

플라시도 도밍고의 노년시절 공연 모습


플라시도 도밍고는 1941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태어난 세계적인 테너로, 16세부터 음악 활동을 시작해 반세기가 넘도록 오페라 무대와 지휘자로서 쉼 없이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오페라의 제왕'으로 불리며, 뛰어난 가창력과 연기력으로 다양한 레퍼토리를 섭렵하고, 전 세계 오페라 팬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바리톤에서 테너로의 전환

도밍고는 스페인 민속 가극 사르수엘라 가수였던 부모님 밑에서 음악적 기초를 쌓으며 자랐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와 지휘를 배웠으나, 14세에 성악으로 진로를 변경했습니다. 처음에는 바리톤으로 활동을 시작했으나, 이후 테너로 전향해 1961년 캘리포니아 몬탈레 가극장에서 라 트라비아타의 알프레도 역으로 테너 데뷔를 하였습니다. 이후 이스라엘 텔아비브 가극장 전속 가수로 활동하며 유럽 무대에 진출했고, 마르세유 가극장에서 나비부인의 핑커톤 역을 맡아 유럽에서의 입지를 다졌습니다.

뜻밖의 대역에서 거둔 성공

도밍고의 미국 데뷔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프랑코 코렐리의 대역으로 출연하며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1968년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의 마우리치오 역을 맡아 성공적으로 데뷔했고, 이는 그의 앞길을 활짝 열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베르디와 푸치니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오페라에서 주역을 맡으며, 세계 정상급 테너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도밍고는 루치아노 파바로티,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쓰리 테너’로 불리며,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특히, 1990년 로마 월드컵 전야제에서 열린 쓰리 테너 콘서트는 대중적 활동의 정점을 찍으며, 오페라를 전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오페라의 제왕: 다양한 활동과 업적

도밍고는 단순한 성악가로서의 활동을 넘어 지휘자로서도 활약했습니다. 1980년대부터 어린 시절 공부했던 지휘에 다시 관심을 갖기 시작해 오페라와 교향악단을 지휘하며 활동의 폭을 넓혔습니다. 그는 백 개가 넘는 역할을 소화하고, 수백 회의 오페라를 녹음했으며, 이 중 여덟 개의 오페라가 그래미상을 수상하며 그의 실력을 입증했습니다.

특히, 도밍고는 다양한 언어와 스타일의 오페라를 섭렵하며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오페라뿐만 아니라 고향의 사르수엘라 레퍼토리까지 폭넓게 아우르는 스펙트럼을 자랑합니다. 그의 연기력과 표현력은 특히 푸치니의 작품에서 빛을 발하며, 마농 레스코의 데 그뤼 역은 최고의 평가를 받았습니다.

도밍고는 1998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데뷔 30주년을 기념하며 삼손과 데릴라를 개막 공연으로 올리며 메트로폴리탄 개막 공연 17회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결론: 플라시도 도밍고의 예술적 유산

플라시도 도밍고는 오페라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성악가이자 지휘자로, 그의 음악적 유산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의 따뜻하고 유연한 음색은 오페라 팬들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도밍고의 연기력과 폭넓은 레퍼토리는 오페라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그는 여전히 고향의 사르수엘라를 사랑하며, 전 세계 무대에서 활약을 이어가고 있는 오페라의 진정한 제왕입니다.